한국사상의 발해사 위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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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6-20 09:1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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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해의 존속시에 아직 여진인은 독립적인 하나의 국가체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고, 종족적 정체성이 확립된 것도 아니었다. ... , 한국사상의 발해사 위상인문사회레포트 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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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대에 金이 강성해지면서 생여진과 숙여진의 통합을 표방할 때 발해에 상대하여는 “女眞渤海本同一家”라고 하여, 종족적 유대감을 표방하기도 하였다. ...
후대에 金이 강성해지면서 생여진과 숙여진의 통합을 표방할 때 발해에 대상으로하여는 “女眞渤海本同一家”라고 하여, 종족적 유대감을 표방하기도 하였다. 이런 면에서 고구려 변방인으로부터 출발한 발해인은 고구려文化(culture) 의 기반 위에서 그…(투비컨티뉴드 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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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사상의 발해사 위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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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대에 金이 강성해지면서 생여진과 숙여진의 통합을 표방할 때 발해에 대해서는 “女眞渤海本同一家”라고 하여, 종족적 유대감을 표방하기도 하였다.
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후대의 여진족의 근간이 되는 물길계 말갈이나 고구려계 유민과도 구별되는 상호간에 융합되어진 별도의 종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. 발해사를 한국사의 입장에서 고구려사와의 연관성을 위주하여 한국사 체계내로 설정한다면, 金의 태조가 여진과 발해는 一家라 하여 발해인들에 대한 동족의식을 강조한 것은 발해사의 여진민족사 내지 말갈사로 귀결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
한편 여진인이 발해인에 대하여 종족적 동질성을 강조한 것은 발해인과 고구려인의 유대감과도 비교될 수 있다 이 양자의 사이에서 발해인은 고구려의 정통 후손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대 여진인의 직접적인 선조도 아닌 발해 나름의 종족을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였던 것이다.